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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백교 사건과 교주 그리고 백백교 동굴 위치

백백교는 일제강점기 1920~30년대에 가평에서 창궐했던 사이비 종교 집단으로 교주가 내린 지시를 따라 300여 건이 넘는 살인사건을 자행했던 것으로 유명합니다. 이 글에서는 백백교 사건에 대한 전반적인 이야기와 백백교 교주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백백교 교주


백백교는 구한말 종교인 백도교의 교주 전정운의 아들 전용해가 만들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전정운이 죽자 그 자리는 전용해가 이어받았고 전용해는 교주가 되자 이름을 백백교로 바꿨습니다.

백백교 교주 머리

당시 자살한 전용해의 시신을 거둬 일제가 범죄 연구용으로 삼기 위해 머리를 잘라 포르말린 용액 속에 넣어 보관했다고 합니다.

그 뒤 해방 이후에는 국립과학수사연구소 지하실에 보관돼 있었지만 지난 2011년 10월 25일 서울시립승화원에서 화장됐습니다.

백백교-사건-교주-백백교-동굴-위치-이미지

백백교 동굴 위치

경기도 동두천시 상봉암동 318에는 과거 다수의 신도를 살해했다는 백백교와 관련된 동굴이 있습니다. 이 장소는 과거에는 천원금광 터로 알려졌었습니다. 백백교도 천원동굴이라고도 합니다.

백백교 가입 조건

백백교에 가입하기 위해서는 남자들은 재산을 모두 헌납하고, 여자들은 성상납을 해야 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백백교 사건

백백교는 유곤룡이라는 청년 때문에 실체가 드러났습니다. 유곤룡은 자신의 아버지가 전 재산을 백백교에 헌납한다는 사실에 반발했고, 이후 신문사를 찾아가 백백교의 실체를 폭로했습니다.

경찰은 백백교에 대한 수사에 착수해 아지트에서 300구가 넘는 시신을 발견했습니다. 전용해는 자살했고, 12명이 사형선고를 받았습니다.

전용해는 1937년 4월 7일 경기도 양평 용문산에서 자살한 채로 발견되었는데 칼로 목을 찌른 상태였고, 코 일부분이 산짐승에게 먹혀 흉한 모습이었다고 합니다.

당시 동아일보에서는 백백교 사건에 대해 아래와 같이 보도했습니다.

”서울 동대문경찰서에서 지난 2월 16일부터 검거 취조에 착수한 백백교(百百敎) 사건은 이름만으로 종교단체 같으나 취조에 따라 전개되는 그 내용을 보면 사기, 부녀자 능욕, 강도뿐만이 아니라 우매한 지방 농민들을 허무맹랑한 조건으로 재산을 몰수하고, 부녀자의 정조를 함부로 유린한 후에 그 비밀을 막기 위하야 남녀노유를 막론하고 닥치는 대로 살육해 버린 살육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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